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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시 #10 무너져가는 여름밤 닳아버린 청춘속에
무너져 가는 여름밤 닳아버린 청춘 속에 서로가 할 수 있는 건 사랑 말고는 없었다
- 1:00 | 오늘 한시
- · 2023.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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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간과 사귀는 법을 배워야 해요 아니면 자신과 처음 만난 것처럼 새로 사귀어야죠 오리엔테이션은 언제나 어리둥절해요 다과를 차려놓고 둘러앉아 볼까요 나와 공간과 나 처음엔 귓속말, 다음엔 얼굴을 마주 보고 말하죠 그러나 점점 큰소리를 쳐야 들리는 곳까지 멀어져요 종이컵 전화라도 만들 걸 그랬어요 벙긋거리는 입으로, 뭐라고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요? 모래사장이 펼쳐져요 집은 멀어지고 나는 자꾸 나에게 돌아가려 애써요 애초에 목소리는 없어요 우리의 혀는 색을 잃었죠 말은 어둠 속에 잠기지만 표정이라도 보이는 곳에 있어줘요 벌써 저기 멀어진 당신 등 뒤의 얼굴이 낯설어요 우리 사이엔 발자국이 어지러워요그곳에 내 문자가 도착이나 할까요 - 팽창하는 우주, 권민경
해는 다 졌고 꽃도 저물었고 하루가 죽었고 마음의 지평선 위로 별이 총총 눈을 떴고 달은 튕겨 오르고 너는 불쑥 솟고 내 어둠에 네가 불을 켰고 너와 나의 빈틈 사이로 한숨이 날아들고 너는 잦아들고 너의 귓속말이 바람으로 불어오고 나는 흔들리고 눈썹 아래로는 작은 바다가 생기고 그냥 울어버리고 그대로 미칠 것 같은데 나 어떡하냐고 불꽃처럼 확 없어져 버리고 싶다고 - 질식, 서덕준 -
무너져 가는 여름밤 닳아버린 청춘 속에 서로가 할 수 있는 건 사랑 말고는 없었다
더 잃을 것이 없어지느라 배도 몇 번 째본 내가 기고만장해서 여기가 바닥인가 중얼거리면 예, 거기가 바닥입니다 누가 발밑에서 답한다 내 무덤 아래에 늘 다른 무덤이 있다 - 바닥, 이영광 요즘의 나 인 것 같다. 더 잃을 것도 없는 바닥으로 가고 있는 느낌. 나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많고, 바닥에서 기고 있을 때 누군가가 밭밑에서 저도 여기 있다고 위로를 해준다면 과연 위로가 될까를 싶지만 달라질 게 있을까 싶지만 바닥을 벗어날 일이 있나 싶지만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은.
귀퉁이가 좋았다 기대고 있으면 기다리는 자가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가 물러갔다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개가 한 마리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개 개도 나를 처음 봤을 것이다 내가 개를 스쳤다 개가 나를 훑었다 낯이 익고 있다 냄새가 익고 있다 가을은 정작 설익었는데 가슴에 영근 것이 있어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았다 땀을 흘리는데도 개는 가죽을 벗지 않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 땀을 흘리는데도 나는 외투를 벗지 않고 있었다 어찌하지 않은 일 우리는 아직 껍질 안에 있다 뭔가 잡히는 것이 있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꼬깃꼬깃 접힌 영수증을 펴보니 다행히 여름이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 - 계절감, 오은 계절이란 단어는 참 미묘한 것 같다. 어떤..
남들은 우습다 유치하다한들 나는 믿는다 영원한 영혼을, 죽음 너머 그 곳을 그렇다고 믿자 내가 늙고 어느덧 잔디를 덮어눕고 당신이 있는 그 곳에 가거든 한 번 심장이 터져라 껴안아라도 보게. 나 너무 힘들었다고 가슴팍에 파묻혀 울어라도 보게. - 서덕준, 천국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연탄재'와 '너'의 대비적인 상관관계, 그리고 두 단어가 내포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돋보이는 시였다. 제목인 '너에게 묻는다'처럼 '너'에게 마지막 행을 통해 화두를 던진다. 누군가에게 뜨겁게 타올라 헌신하고 희생하고 하얀 재로 남은 연탄재와 그 대상을 바라보고 행동하는 '너의' 의미를 잘 생각해보며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정신적 의미를 한번 생각해보면 좋은 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