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시 #6 운수 좋은 여름이라서 당신과 아주 조금만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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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가 내일 지난 길을 오늘 걸어서 납치당하지는 않았다

지진이 난 도시의 여관에 한 달 후에 자지 않아서 내가 잠잔 여관이 폭삭 내려앉는 것을 텔레비로 볼 수도 있었다

 

하염없이 걷다가 아, 이대로 이 금빛 들판,

떠나도 괜찮겠다 했다 어디 다시 도착해도 좋겠다 했다

천지간, 그 사이에서 실종되어도 그만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내 여름의 신발은 닳았다

 

시간의 가슴에서 또 하나의 시간이 나와 태양을 가두었다

세상은 컴컴해졌다 비가 왔다

그 비를 맞으며 바위들은 어둑어둑 가슴 바깥으로 걸어 나갔다

 

바위에다 자신의 영혼을 나누어 주었던 독수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흙은, 이제 막 우리가 깨워낸 흙은

가슴에 묻어둔 토기를 보여주며 침묵했다

 

토기는 발을 잃은 채 하늘의 서재에 꽂혀 있고

별들은 하늘의 서재에 가득 찬 책장을 넘겼다

밤의 별들은 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꽃의 잠을 모았다

그 잠 속에서 나는 이렇게도 하릴없이 중얼거렸다

 

당신 참 나쁘다 당신 참 예쁘다

운수 좋은 여름이라서 당신과 아주 조금만 헤어졌다

떨리던 여름은 고요한 몸이 되어 멀리 있는 당신을 안았다

 

- 운수 좋은 여름, 허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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